영문판 “괴물” 포스터를 처음 보았을 때 괴물을 왜 Monster가 아닌 Host 로 표기했는지 궁금했다. 후에 찾아보니 Host 에는 흔히 알고 있는 주인이라는 뜻 외에 숙주-괴물-라는 뜻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고 제목을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Host 에 담긴 뜻이 과연, 정말 숙주만을 의미하는 것일까?
영화 속에서 사건의 장소인 한강은 우리나라의 중심부근에 위치하며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한강에 대한 이러한 감정은 영화 속 ost 를 통해서도 충분히 보여 진다. 고향, 인생이라고 일컬어지는 한강에서 소시민으로 대표되는 가족은 대항 하지 못할 괴물과 사투를 벌인다. 한강은 가족의 삶의 터전이었으나 그 곳에서 가족은 식구를 두 명이나 잃는다. 자신의 일생을 유지시켜주던 곳에서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 되는 것이다.
삶의 터전이었던 한강에서 왜 그들은 소중한 것을 잃게 되는 것일까? 앞에서도 말했지만 당연히 괴물의 습격에 의해서이다. 괴물이 등장함과 동시에 시민들의 공간이었던 한강은 출입이 통제되며 더 이상 공유할 수 없게 되고 시민들이 살아오던 방식 혹 법은 이제는 더 이상 그곳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게 된다. 한마디로 한강은 괴물만의 공간이 되며 더 이상 우리의 공간이 아니다.
영화 속 모습은 우리가 사는 모습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국민으로서 당당히 보장받을 권리를 권력이라는 이름 앞에서 종종 누리지 못했다. 우리의 기본적인 권리를 손상시키는 권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바로 우리가 투표를 통해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한 이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이들은 외부의 영향을 받아 변종된 영화 속 괴물과는 다르게 자가 변종방법을 통해 우리가 부여한 권력에 대한 정의를 변종시킨다.
이렇게 변종된 권력은 우리의 터전에서 우리를 몰아내고 자신들만의 공간으로 바꾸어 버린다. 즉, 독재체제를 형성해 간다. 이러한 체제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바로 저항하는 것이다. 이는 약자의 최대의 방어인 것 이다. 혁명이란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서리의 개념과도 같다. 배고픈 형제는 한강에 몰래 들어가 매점서리를 해온다. 이처럼 우리도 우리의 빼앗겨 버린 권리에 대해서 외면하지 않고 그에 대해 저항을 하는 것이다. 이는 보장받아야 할 것을 정당하게 보장받지 못하는 자가 취할 수 있는 정당한 행동이다.
지금은 우리는 그 권리를 충분히 누리고 있는가? 아니면 권력에 대해 온전히 저항, 즉 정당한 행동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시청광장을 빼앗기고, 헌법에 명시되어있던 집회. 시위에 관해서도 제한 받아왔다. 또한 권력은 미네르바 사건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이들의 입을 닫게 했고, 점차적인 인터넷 실명제의 도입으로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할 취재원 보호의 원칙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또 얼마 전에는 공무원 노조를 불법단체로 간주하는 등 민주국가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행동들을 시행하고 있다.
헌법 제 1조 2항에 명시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라는 말은 정말 빛 좋은 개살구인가. 지금 사회의 주인은 바로 힘 있는 자, 권력자이다. 영화는 이러한 사실을 정말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괴물에 잡혀갔던 현서가 죽음으로서 돌아오는 장면은 잔인할 만큼 사실적이다. 권력에 대한 저항은 어쩌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희망을 보는 것이다. 현서가 살린 그 꼬마아이는 우리가 저항을 통해 이루어 낸 것과도 같은 것이다. 비록 보잘 것 없고 우리가 이루고자 했던 목적이 아닐 순 있지만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분명 조금씩 조금씩 얻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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